
‘애교’를 글로 배워가며 만난 첫 애인에게서 나는 보란 듯이 두 달만에 차였다.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 없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 친구와 만나는 동안 나는 애인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왜 필요한 건지, ‘사랑한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고민하느라 바빴다. 세상은 나에게 애인이 있어야만 한다고, 애인이 없는 사람은 패배자 취급을 하면서 왜 ‘사랑'을 해야 하는 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사랑은 사치일까>(벨 훅스, 현실문화, 2015)의 저자 벨 훅스는 아버지가 절대 권력인 가부장적 문화의 가정에서 자랐다.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50년대 여자의 운명은 좋은 가정주부로서 남편과 가족의 건강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진학해서 만난 페미니즘은 사랑에 대한 탐색을 실패나 나약함의 신호로 여겼다. 그는 “남성을 중심에 두지 않아도, 남성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아도 삶이 가능하다(p.64)”는 페미니즘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하지만 여성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지거나,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여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지성을 인정하는 남자를 만나자마자 사귄다.
사랑하는 방법을 잘못 배우는 여자들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매길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들은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확신하기 위해 타인을 유혹하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p.15)”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실패자가 아님을 증명했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그녀의 지성을 인정하고 응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를 잡으며 성공한 시점에 남자는 지원을 거둬들인다. “자기가 우월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여자의 지성에 신경 쓰지 않지만, 여자가 남자를 능가하고 추월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주변의 경고가 현실이 되자 그는 15년 동안의 동거를 청산한다.
벨 훅스는 자라 온 집안의 풍경부터 대학 생활, 동거, 자궁 절제술까지 이어지는 자신의 삶을 통해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려준다. 페미니즘을 만나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해도 여전히 여성에게 사랑은 어렵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선택하는 방법보다는 선택받는 방법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는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거짓
“가부장제 속 여성이 자신을 사랑 일에는 언제나 위험 이 따른다. 여성은 부족하고 불안하고 특히 의존적이고 궁핍하다고 스스로 느끼거나 행동할 때 더 많은 것을 얻곤 했다. (p.174)”
<백설공주>나 <헨젤과 그레텔> 같은 동화는 여성의 경쟁을 부추기며 오직 한 명의 여성만이 승자가 되거나 간택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동시에 여성의 신체에 대한 사회의 끊임없는 구속은 여성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는 길을 자연스럽게 마련해 준다. 약자의 길을 거부하면 ‘이기적인 썅년’이 된다.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양육자의 역할을 포기하는 여성은 가부장적 남자를 따라하게 된다.
저자는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사랑의 의미와 힘을 깨닫게 된 것이 유감이라고 밝힌다.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꿈에서 벗어날 때,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이 찾아온다고 한다.
해당 게시물에 음란물(아동 포함), 도박,광고가 있거나 바이러스, 사기파일이 첨부된 경우에 하단의 신고를 클릭해주세요.
단, 정상적인 게시물을 신고할 시 사이트 이용에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treeworld 님의 최근 커뮤니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