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계속 나오니 말씀만 하세요. 오늘 밤 제대로 마시고 ‘운명의 상대’를 찾아봅시다!”
지난 7일 오후 9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지하 1층. 20·30대 남녀 100여 명이 사회자 진행에 따라 소맥(소주+맥주)을 마시고 있었다. 출입문엔 간판이 없었다. 10인석 테이블 곳곳에 ‘음식점·주점 판매 불가’ 문구가 인쇄된 640mL짜리 소주 페트병과 대용량 발포주(맥아 비율이 10% 미만인 유사 맥주) 병이 수십 개 뒹굴고 있었다. 모두 일반 주점에서는 팔 수 없는 가정용 술이었다.이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한 명당 참가비로 4만3000원을 냈다고 한다. 손님들은 행사 요원이 냉장고에서 수시로 내오는 술을 마시며 ‘러브샷’을 외쳤다. 젊은 남녀의 즉석 만남 장소로 활용되는 이른바 ‘헌팅포차’ 같았다. 헌팅포차는 술 판매 등을 목적으로 하는 주점이다. 하지만 이곳 대표는 본지에 “여기는 술집이 아니라 참가비를 받는 친목 모임 장소일 뿐”이라고 했다.주류 판매 면허 없이 술을 파는 건 불법이다. 면허가 있는 주점이라도 가정용 술을 팔 수 없다. 그런데 주류 판매 면허 없이 가정용 술을 파는 ‘팝업(임시) 일일 주점’이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세청도 최근 관련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팝업 일일 주점은 인터넷 쇼핑몰(통신판매업)이나 시간제로 파티 공간을 빌려주는 파티룸(공간 대여업) 등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놓고 4만~5만원의 참가비를 받고 술·음식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팝업 일일 주점의 이런 ‘변칙 영업’은 서울을 시작으로 인천·부산·대구 등 전국 도시로 확산 중이다. 본지가 주요 팝업 주점 참가자 모집 통로인 소셜미디어와 소모임 모집 앱을 확인한 결과 지난 주말 서울 지역에서 200여 곳을 넘는 업체가 이런 형태의 일일 주점을 열었다.“어차피 무제한인데 여러 병 꺼내와!” 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건물 지하 1층 파티룸에선 20·30대 남녀 30여 명이 쉴 새 없이 가정용 소주·발포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고 있었다. 이곳은 낮에는 파티룸으로 운영되지만 주말 밤만 되면 ‘일일 주점’으로 변신한다. 이날 4만원을 내고 이곳을 찾은 A(30)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데다 아무리 부어라 마셔라 해도 추가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되니 가성비가 좋다”고 했다.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대형 카페도 주말 밤이면 일일 주점으로 변한다. 업소 관계자는 “지난 주말에는 80명 정도가 찾아 수익이 쏠쏠하다”며 “소규모 모임을 하는데 분위기를 띄워야 하다 보니 마트에서 술을 좀 사와서 참가자들에게 제공한다”고 했다.주류 판매 면허 없이 술을 제공할 경우 주류면허법·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카페·파티룸으로 등록해 놓고 술집을 운영하면 식품 위생법에도 위반된다. 일반 음식점이나 주점은 위생 점검은 물론 소방 시설 점검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팝업 일일 주점들은 통신 판매나 공간 대여업 등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 위생·안전 점검을 받지 않는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좁은 공간에 밀집된 인원이 술을 마시는 환경에서 불이라도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고 했다.8일 밤 찾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파티룸형 주점은 비상구는 물론 소화기도 없었다. 소방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 업소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그러나 일반 주점과 달리 이런 형태의 주점은 앱·소셜미디어로 참가자를 모집하는 ‘일회성 소모임’ 형태라 현장 단속이 쉽지 않다.국세청은 최근 지방국세청에 팝업 일일 주점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여러 도시에서 친목 모임 명목으로 술을 파는 업체들이 영업 중인 것을 최근 확인했다”며 “업소들이 주류 판매 면허를 갖고 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