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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씨, 사과 안 해도 됩니다... 저는 감동이었어요

yang120
AC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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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해철은 생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임재범의 보컬을 가리켜 "가창의 모든 부문을 갖춘 천하무적"이란 뉘앙스로 평한 바 있다. 신해철의 코멘트처럼 임재범은 이승철, 신승훈 등과 더불어 1980-1990년대 가요계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손꼽혀 왔으며, 진심이 가닿은 숱한 명곡들을 대중들의 가슴에 아로새겼다.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이끈 시나위의 1986년 작 'Heavy Metal Sinawe '로 데뷔한 그는 외인부대와 아시아나 같은 헤비메탈 밴드를 거쳐 '이 밤이 지나면'이 실린 1991년 작 'On the Turning Away '로 보다 넓은 영역의 대중가수로 자리매김한다.신곡 'Life is a Drama'를 발매하고,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 4 - 무명가수전> 심사 위원을 맡는 등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기에 2026년 1월 4일 JTBC 뉴스룸에서 밝힌 임재범의 은퇴 선언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2025년 11월 29일 대구 공연으로 막을 연 40주년 콘서트 '나는 임재범이다'가 더욱 각별해졌다. 지난 18일 서울 KSPO DOME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공연을 다녀왔다.


그의 마지막이라서일까. 콘서트 타이틀 '나는 임재범이다'가 묵직하게 와닿았다. 그가 지금껏 걸어온 음악의 길과 팬과의 만남, 삶의 밑바닥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 노래의 힘 등 여러 대주제가 함축된 명제라서다. 차분한 말로 공연 제목의 배경과 그간의 감사함을 전한 임재범에게서 이 투어를 향한 결의를 읽었다.

무대 위에서 임재범은 "결코 만만치 않은 셋리스트 선곡이었다"고 밝혔다. 40년 동안 누적된 히트곡 중 엄선도 어려웠을 거다. 동시에 그는 "현재 목 상태와 음역이 이 노래들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고민을 했다"고 고백했다. 성대도 일종의 소모품이니까. 2시간 10~15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에는 그의 대표곡 대부분이 포함돼 있었다. 사극 드라마 < 추노 >에 삽입된 '낙인'은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예스러운 목소리를 구현했고, 높은 연단으로 올라가 부른 '비상'은 역경 속 한 줄기 희망을 드리웠으며, 2부 초반부에 흐른 '너를 위해'에선 영화 < 동감 >(2000)의 아름다운 장면이 그려졌다.

생경했던 곡들도 저마다의 가치를 발휘했다. 2022년 정규 7집 <세븐 Seven>에 수록된 '여행자'에선 괜스레 신대철이 쓴 '멀어져간 사람아'가 떠올랐다. 이날 하이라이트라고 할 법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날개 못 펴고 접어진 내 인생이 서럽고 서러워 자꾸 화가 나는 나"란 노랫말과 절절한 가창이 어우러진 '이 밤이 지나면'과 더불어 솔로 1집에 실린 세련된 팝 록 넘버 '이제 우리'도 돋보였다.임재범은 "지난 무대에 80퍼센트 이상 힘을 사용해 버렸다"며 본인의 퍼포먼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서 관객에게 연신 사과했다. '고해'와 '너를 위해'를 부르며 일부 버거운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관객 대부분이 그가 날아다니던 시절을 알기에 힘찬 박수로 격려했다. 기량만큼이나 추억을 섭취하려고 본 공연이었으니까.


김이나가 작사에 참여한 신작 'Life is a Drama'를 부르는 그를 관객들은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응원했다. 무대의 카메라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 관객을 화면에 담았다. 무대 위 우뚝 선 임재범처럼 청중 한 명 한 명의 인생도 한편의 극이 아닐까. 하늘 위 별이 지상으로 내려와 군중 속 어느 한 명에게 스며드는 상상을 해봤다.

그는 사실 뼛속까지 로커다. 오죽하면 '고해'가 실린 정규 3집 이름이 <리턴 투 더 록 Return to the Rock>(1998)이다. 40주년 기념 공연이자 사실상 마지막 투어의 종반부에서 로커의 꿈을 품고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로 돌아가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불렀다. 끝맺음 샤우트에서 록과 팝 사이를 경유하며 품었을 일종의 한(恨)과 음악적 뿌리를 엿봤다.

앞서 임재범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아름다운 날들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고 감사의 방식"이라며 은퇴를 밝혔다. 백세시대라는 요즘, 육십 대 중반에 내린 종언(終焉)이 이르게 느껴진다. 꼼꼼하고 진중한 성향상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일 테고 번복도 쉽지 않겠지만 가요계 불세출의 보컬리스트가 혹시라도 은퇴 후 귀환 한다고 해도 반기지 않는 팬이 어디 있겠는가. 팬들은 일흔, 여든 살 임재범의 목소리도 궁금하고 귀 기울일 것이다. 언제나 '임재범은 임재범'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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