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공화국 영웅’ 1호는 누구일까요? 김일성 백두혈통도 아니고 김일성과 같이 만주에서 빨치산을 했던 이른바 ‘혁명 동지’도 아닙니다. 이름도 생소한 ‘성시백’이라는 인물입니다. 대체 누구길래 김일성이 그에게 공화국 영웅 1호의 칭호를 줬을까요. 신출귀몰했던 간첩 성시백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얻어보시죠.
대한민국의 해방정국에는 전설적인 대공 수사관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공산당의 음모를 집요하게 추적해 적발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의 주적은 남한에 근거를 둔 공산당, 남로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사관들이 언젠가부터 이상한 기류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공산당의 활동 흔적이 있는데 남로당은 개입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중에야 밝혀진 것이지만 남로당보다 오히려 더 은밀하게, 그리고 훨씬 더 큰 성과를 내는 공작조직 ‘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 총책이자 사실상의 전부인 인물이 바로 성시백입니다. 남로당의 박헌영이 남한의 주도권을 쥐는 것을 원치 않았던 김일성이 남로당과는 별도의 대남 공작기구로 직할 관리한 것이 바로 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였습니다. 성시백의 활약으로 초조해진 박헌영이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남로당의 공작 활동을 상세하게 보고하도록 김삼룡에게 지시했고, 그 보고서가 대공 수사팀에 발각됨으로써 1949년 국회 프락치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성시백은 190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 중동학교에 다니다 25살에 상하이로 가서 1935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합니다. 정향백, 정백이라는 가명으로 장개석의 국민당을 상대로 프락치 활동을 했습니다. 해방 후 1946년 부산으로 입국해 서울에서 제반 준비공작을 한 뒤 47년 월북합니다. 평양에서 김일성,김두봉과 5일에 걸쳐 비밀 모의를 마친 후 ‘대남특수공작’ 특명을 갖고 47년 5월 서울에 잠입했습니다.
성시백의 간첩활동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데, 실제로 북한 정권은 1990년부터 성시백을 소재로 ‘붉은 단풍잎’이라는 7부작 영화까지 만들었습니다. 성시백은 남로당과 달리 공산당이라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래서 체포 후 당시 언론들은 성시백의 간첩 활동을 ‘무명당’이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이름없는 당’을 표방했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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