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송주영 기자] 양자컴퓨팅이 연구실을 벗어나 상용화를 검증하는 단계에 들어섰단 평가가 나온다. 제조 산업의 분자·재료 시뮬레이션, 금융·물류 등에서의 최적화 문제 등이 양자 컴퓨팅이 먼저 적용될 영역으로 지목됐다. 양자 머신러닝을 이용한 패턴 인식과 복잡한 편미분방정식 해석도 고성능의 양자컴퓨팅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다.
표창희 IBM 아태지역 퀀텀 엔터프라이즈 사업 총괄 상무는 28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25’에서 “양자컴퓨팅이 바로 내년에 대규모 상용화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향후 3~5년 사이 제한된 영역에서 실제 업무에 시범 적용해 볼 수 있는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다만 “이는 전면 도입이나 완전한 상용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일부 업무를 양자로 돌려볼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한다는 뜻”이라고 선을 그었다.표 상무는 “모든 산업 문제를 양자로 푸는 것은 불가능하고, 계산 구조상 양자 방식과 궁합이 맞는 문제부터 순서대로 다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IBM은 2023년 특정 연산 문제에 대해 기존 슈퍼컴퓨터와 양자 시스템을 비교해 일부 조건에서 양자 방식이 더 효율적인 계산을 수행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며 슈퍼컴퓨터를 대체할 기술로 양자컴퓨팅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표 상무는 “이를 ‘양자 유용성(Quantum Utility)’이라고 부른다”며 “상업적 대규모 적용과는 거리가 있지만 연구·파일럿 단계에서는 의미 있는 이정표”라고 말했다.금융 분야는 포트폴리오 구성과 채권 거래 전략 등 제한된 몇 가지 문제를 대상으로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IBM은 미국 자산운용사 벵가드의 채권 포트폴리오 구성에 양자 기반 최적화 알고리즘을 시험 적용했다. 수익률·리스크·규제 조건을 모두 고려해 계산한 결과 양자 알고리즘이 제안한 결과값이 약 0.5% 오차 범위 내에 들어 정확도를 증명했다.HSBC는 회사채 호가가 실제로 체결될 확률을 예측하는 문제에 양자 머신러닝을 적용해 기존 모델과 성능을 비교했다. 그 결과 체결될 확률에 대한 예측치가 약 34% 정도 개선되는 결과가 나왔다.표 상무는 “양자컴퓨터가 CPU나 GPU를 밀어내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대량 데이터 처리나 전통적 시뮬레이션은 여전히 HPC·GPU가 담당하고, 그중 일부 연산을 양자로 넘기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현실적인 그림”이라고 설명했다.IBM의 기술 로드맵에 따르면, 회사는 2020년대 중반까지는 양자 유용성 사례를 늘리는 단계, 2020년대 후반에는 특정 분야에서 제한적 양자 우위를 노리는 단계, 2029년 즈음에는 오류 내성을 갖춘 프로세서를 구현하는 단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표 상무는 “2029년 오류 내성 프로세서가 실제로 계획대로 구현된다면 그 이후 2030년대 초·중반에는 산업용 양자 시스템에을 실무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현재 양자 시스템의 가장 큰 제약은 오류율과 안정성이다. 큐비트 수 자체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실제로 활용 가능한 품질 검증 단계가 남았다.표 상무는 “최근 공개한 ‘나이트호크’ 프로세서는 기존 세대 대비 회로 복잡도를 약 30% 정도 더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선됐다”며 “여전히 제약이 많지만, 연산 품질과 연결성을 해마다 일정 비율로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인프라도 아직은 과도기적 구조다. IBM은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양자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면서 클라우드 형태로 양자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약 9곳에는 고객사 내부에 설치된 온프레미스 양자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표 상무는 “현재는 일부 연구기관·대형 기업이 클라우드나 전용 라인을 통해 양자 시스템을 쓰는 구조”라며 “국내 기업의 경우에도 당분간은 이런 간접 활용 방식이 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내 준비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단계’가 많다”고 진단했다. 그는 “양자역학을 깊게 이해하지 않더라도, 각 회사가 가진 문제 중 계산 복잡도가 높고 반복 시뮬레이션이 많은 영역이 무엇인지 파악해 두는 것이 첫 단계”라며 “그다음에 작은 개념검증(POC)을 통해 ‘양자로 돌려볼 만한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해외 기업들도 3~5년 동안은 소규모 프로젝트를 반복하며 내부 역량을 쌓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 기업도 당장 큰 투자부터 하기보다는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의 소규모 실험부터 시작하는 것이 부담이 덜하단 설명이다.정부·연구기관과의 협력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양자컴퓨팅은 한 기업이 단독으로 모든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정부, 대학, 글로벌 기술 기업이 함께 인력 양성과 실험 환경을 만드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한국IBM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퀀텀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중소벤처기업부와 스타트업과 양자 기술 적용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출처 : 시사저널e(https://www.sisajourn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