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신라젠 투자로 수천만원 손해를 본 오세훈 서울시장. 지난해 미국 주식투자로 대박을 치며 1년 새 재산이 14억원 불어났다. ‘서학개미’ 오 시장의 장바구니에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소형모듈원전(SMR), 비트코인 관련주 등이 담겼다.
오 시장은 지난해 만료된 보험과 금융상품을 정리하고 남아 있던 신라젠 257주와 브라질 국채를 팔았다. 대신 마이크로스트래티지(현 스트래티지) 1241주, 팔란티어테크 1310주, 아이온큐 2500주, 엔비디아 1100주를 사들였다. 오 시장이 매수한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4개 종목은 지난 한 해 각각 약 380%, 341%, 250%, 189% 올랐다. 오 시장이 보유한 4개 종목의 평가액은 지난해 말 기준 10억5191만원이었다.아내인 송현옥 세종대 교수의 투자 종목은 더 많았다. 오 시장과 같은 4종목을 매수한데 이어 뉴스케일파워(2860주), 리게티컴퓨팅(1100주), 사운드하운드AI(900주), 오클로(621주), 테슬라(375주), TSMC(220주), ARM(100주) 등을 매수했다. 송 교수가 픽한 종목의 평가액은 지난해 말 기준 18억4312만원이었다.오 시장 부부가 지금까지 보유한 종목을 바꾸지 않았다면 자산은 더 불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비 현재 기준 스트래티지와 ARM을 제외하고 전부 크게 올랐다.정치인 중에서도 투자 감각이 남다른 이들이 있다. 어쩌면 유능한 프라이빗뱅커(PB)의 조언을 받았을 수도 있다. 공직윤리시스템에 공개된 고위 공직자들의 ‘쇼핑 목록’을 분석해봤다.◆고위 공직자 ‘국장’에 올인고위 공직자 상당수는 ‘국민의 주식’이라 불리는 대기업 종목을 선호하거나 가족 기업·관계사 지분 등 비상장주식을 통해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지난해 재산공개 대상자인 정부 및 지방 고위 공직자 2047명 중 재산 총액 1위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이세웅 평안북도지사(총재산 1046억8588만원)로 파악됐다. 우리나라는 통일을 대비해서 차관급 직위의 이북5도의 지사를 두고 있다(대통령 임명직).그는 전체 재산의 절반가량을 주식 형태로 보유하고 있었다. 포트폴리오는 삼성전자(90만5700주)를 비롯해 대한항공(1만8537주), 한진칼(1940주), LG전자(3283주), LG(352주), 포스코인터내셔널(2060주), KB금융(4966주) 등 국내 대표 대기업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 주식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평가액은 521억974만원으로 1년 전보다 175억2584만원 감소했다. 증시 부진 여파로 주요 보유 종목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손실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하지만 올해 들어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일인 6월 4일 코스피는 2770.84였다. 불과 보름 만에 3000선을 회복했고 10월 27일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했다. 특히 반도체주는 한국 증시를 떠받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이 지사는 2023년과 2024년 내내 보유 주식을 사고팔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올해도 이를 유지했다면 그의 주식 평가액 기준으로 크게 불어났을 것으로 보인다.예컨대 이 지사가 가장 많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가는 연초 5만6000원에서 최근 10만원 선까지 오르며 약 80% 상승했다.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보유 주식 평가액이 약 400억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한국유리공업 공동 창업자인 고(故) 이봉수 전 신일기업 회장의 장남인 이 지사는 비상장주식 신일기업 7768주(평가액 24억376만원)를 보유하고 있다.그다음으로 공직자 재산 톱 순위 중 증권 자산 비중이 높은 인물은 최지영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였다. 그는 비상장주식인 제일풍경채(풍경채)로만 평가액 363억4450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주식은 모두 배우자(제일건설 오너 일가의 딸) 명의로 등록돼 있다.◆국회의원 원픽은 ‘삼성전자’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얼시그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6063명(국회의원 299명)의 공직자를 대상으로 증권 자산 순위를 매긴 결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보다 주식으로 부를 축적한 사례가 더 많았다. 상위 100위권 내는 모두 야당 의원들이 차지했다.1위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다만 그의 주식 자산은 전부 본인이 창업해 현재 최대주주로 있는 안랩 주식이었다.국민의힘 의원들은 삼성전자를 ‘믿을 종목’으로 가장 많이 담고 있었다. 국회의원 중 증권 자산 규모 3위인 윤상현 의원 역시 삼성전자 주식을 몇 년째 매도 없이 꾸준히 유지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 보유 주식 수는 2만8106주였다.윤 의원의 배우자는 지난해 미국 주식에 관심을 보였다. 토스트(2050주), 팔란티어(1743주), 엔비디아(615주), 오라클(457주), 셀레스티카(415주), 앱플로빈(335주), 테슬라(293주), TSMC(123주) 등 AI·반도체·전기차·클라우드·플랫폼 관련 글로벌 기술주를 다양하게 사들였다.반면 LG에너지솔루션(903주)과 SK바이오사이언스(53주)를 전부 팔았다. 두 종목은 업종 부진 여파로 지난해 주가가 연초 대비 하락했다.여당 의원 중에선 손명수 더불어민주당 의원(162위)이 주식 부자로 꼽혔다. 전체 재산을 부동산(41.6%), 주식(32.1%), 예금(26.3%) 등으로 비교적 고르게 분산해 보유하고 있었다.손 의원은 삼성전자(300주)와 SK하이닉스(50주)를 모두 처분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황이 부진했지만 올해 들어 슈퍼사이클이 재점화되며 두 종목이 급등하면서 결과적으로 아쉬운 매도였다.손 의원은 지난해 아이온큐(200주)도 모두 팔았다. 정확한 매수·매도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아이온큐 주가는 지난해 이어 올해도 급등했다(120%). 이 종목은 리게티컴퓨팅과 함께 대표적인 양자컴퓨터 관련주로 꼽힌다. 양자컴퓨터는 AI 연산 병목을 해소하고 암호·신약·금융 등 핵심 산업의 구조를 뒤흔들 차세대 연산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반면 그는 LS마린솔루션(1200주), 삼성중공업(294주), 두산에너빌리티(126주) 등 해상풍력·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관련주를 집중 매수했다. 현재까지 보유했다면 평가차익이 컸을 것이다. 세 종목은 올해 각각 약 100%, 100%, 260% 뛰었다.◆금융통화위원들, 굳이 주식 하자면 ‘미장’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은 전반적으로 주식투자 비중이 낮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단 한 주의 주식도 보유하지 않았다. 일부 위원들은 소액이지만 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특히 장용성 금융통화위원의 재산은 보유한 미국 주식의 주가 상승으로 1년 새 24억2000만원이 불어나며 금통위원으로는 처음으로 100억원대 재산을 기록했다.장 위원은 지난해 말 기준 알파벳(5260주)과 아마존(3700주), 테슬라(114주)를 보유하고 있다. 평가액은 41억7476만원, 평가이익(1년)은 15억24675만원었다. 배우자 명의의 테슬라(87주)와 애플(26주) 주식도 2813만원 올라 6302만원을 기록했다.장 위원 부부가 보유한 종목을 유지했다면 자산은 더 불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알파벳, 아마존, 테슬라, 애플은 각각 약 47%, 13%, 21%, 12%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