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추진되자 주출원사인 교과서 발행업계가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교과서는 국가 차원의 검정·인정 절차를 거쳐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되지만, 교육자료는 선택적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관련 업계는 이러한 입법 철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DT 발행(예정)사와 교과서발전위원회는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AI 디지털교과서의 위헌적 입법 철회를 위한 발행사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현장에는 교문사·교학사·금성출판사·동아출판·비상교육·씨마스·아이스크림미디어·엔이능률·와이비엠·지학사·천재교과서·천재교육·디딤돌교육 등 교과서 발행사부터 에듀테크업체까지 총 20여곳이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지난 10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AIDT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민주당이 야당일 때 본회의를 통과됐으나 윤석열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됐다.

민주당은 앞서 AIDT의 낮은 품질, 현장 수용성 부족, 기술적 한계, 디지털 격차 심화 및 개인정보 우려 등을 이유로 도입을 반대해 왔다.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이를 다시 핵심 입법 과제로 가져가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오는 23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 최종 통과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AIDT 발행사와 교과서발전위는 즉각 공동 입장문을 내고 ▲지난 3월부터 학교에 공급된 AIDT의 '교과서' 지위 변경 시도 중단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전면 재논의 ▲정부·국회·발행사·교원·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민·관·정 교육혁신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요청했다.

이날 업계는 AIDT 지위 강등시 투자비 회수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AIDT 발행사 추산에 따르면 ▲AI 연수 및 공공 플랫폼 국비 약 5300억원 ▲인프라 비용 약 8000억원 ▲개발사 출원 비용(한 종당 약 40억원씩 200여종) 약 8000억원 등 총 2조원 이상의 투자가 이뤄졌다.

박정과 천재교과서 대표는 "정부를 믿고 투자했는데 개발비 회수가 안 되면 결국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 앞으로 민간 기업이 국가 정책과 파트너십을 가져가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보조출원사인 에듀테크 기업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 관계자도 "지난 2~3년간 2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AIDT를 만들어 왔지만, 이것이 교육 자료로 격화된다면 전혀 비용 회수가 될 수 없다"며 "스타트업으로서는 생명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AI·에듀테크 기업 아이스크림미디어의 현준우 대표는 "올해 AIDT 발행사로 합격한 업체들은 8월 말 최종 확정을 받기에 일단 계속 투자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교육자료가 된다면 그때 가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AIDT 기능과 기술력이 미흡하다는 일각의 시선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이욱상 동아출판 대표는 "학생들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맞춤형 학습 기능을 위해 딥러닝 방식의 'DKT(Deep Knowledge Tracing)'를 적용 중"이라며 "교육용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해 챗봇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어 과목에서는 학생들의 발화를 자동으로 인식해 대화하고 첨삭 서비스까지 한다"며 "3차 연도까지 진행한다면 AIDT에 더 나은 AI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안팎에서는 AIDT의 교과서 지위 박탈 가능성이 예견된 순서였다는 시각도 있다. 애초 직전 정부는 올해 1학기부터 초등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수학·영어·정보 과목에 AIDT를 의무 도입하는 것이 목표였다. 오는 2028년까지 국어, 사회, 과학 등 전 과목으로 단계적 확대도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일부 현직교사 및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면서 정부는 AIDT 도입 여부를 우선 학교 재량에 맡겼다. 시범 운영에 나선 교육 현장에서 실제 호응은 낮았다. 상반기 기준 전국 약 1만2000여 개 초·중·고교 중 AIDT를 채택한 학교 비율은 약 32%에 머물렀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돼 AIDT가 교과서 지위를 잃고 교육자료로 격하된다면 AIDT 사업은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AIDT 검정에 합격한 주요 보조출원사 관계자는 "AIDT 사업의 지위 격하로 인한 손해는 발행사나 에듀테크 기업이나 비슷할 것"이라며 "정책 변화를 계속 주시하며 어떻게 대응할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으로, 당장 결정된 방향성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AIDT는 AI 기능이 탑재돼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로 사용하는 교과서다. 학생의 학습 이력을 학습해 수준에 맞는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고 교사가 수준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조 교사'를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