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전기 자극을 주거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정신 질환을 치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SF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런 치료가 ‘전자약’과 ‘디지털치료기기(DTx)’의 형태로 임상 현장에서 시도되고 있다.
◇우울증, ADHD 등 다양한 질환에 활용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디지털치료기기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환자가 스스로 시행하기 어려운 재활 치료나 인지행동치료, 약물 관리 등을 소프트웨어 지도를 따라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전자약은 전기 자극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기를 지칭하기 위해 업계에서 사용하는 비공식적 용어다. 몸에 실질적 자극을 가한다는 것이 디지털의료기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현재 정신 건강 분야에서 쓰는 대표적 전자약으로는 ▲TMS(경두개자기자극술) ▲tDCS(경두기직류자극술) ▲VNS(미주신경자극술) 등을 꼽을 수 있다. TMS는 자기장을 이용해 약한 전기 신호를 줌으로써 뇌에서 문제가 생긴 부분의 활성도를 증진하는 원리다. tDCS는 자기장 대신 전극을 이용해 보다 약한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뇌 기능을 조절한다. VNS는 TMS나 tDCS와 달리 뇌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이완과 관련된 말초 신경의 일종인 미주 신경을 자극한다. TMS와 tDCS는 머리에 착용하는 기기로, VNS는 귀에 착용하는 기기로 치료를 시행한다. 대한뇌자극학회 장진구 개원정보이사(연세포레스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는 “우울증, 강박증, 불면증, 공황장애 치료에 TMS·tDCS·VNS가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디지털치료기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으면서 다양한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에도 적용 가능한 비약물적 치료법으로는 '뉴로피드백'이 있다. 뉴로피드백은 환자의 뇌파를 측정해 시각적 또는 청각적 신호로 변환해 환자에게 알린 다음, 환자가 그 신호를 참고해 자신의 뇌파를 조절하도록 함으로써 신경망을 강화하는 뇌파 훈련 기법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순범 교수는 “ADHD에는 TMS·tDCS·VNS보다 뉴로피드백이 쓰이는 편이다”고 했다.정신건강의학과 질환 중에서도 병태생리가 비교적 많이 알려진 질환들은 전자약 개발에 유리하다. 장진구 이사는 “강박장애, 틱, 중독, 우울증 등이 전자약 개발과 치료 적용이 용이한 질환”이라며 “이 질환들은 모두 수술적 치료의 효과가 이미 알려졌는데, 전자약을 통하면 뇌에서 문제를 일으킨 부분에 수술 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특히 전도유망한 질환은 우울증이다. 홍순범 교수는 “약물치료만큼이나 우울증에 효과적이라고 밝혀진 인지 행동 치료나 상담 치료 같은 비약물적 치료를 디지털치료제로 구현할 수 있다”며 “또 뇌 안쪽보다는 바깥쪽이 자극하기 쉬운데, 우울증은 다른 질환들에 비해 뇌 전두엽 바깥쪽과 관련이 많다”고 말했다.◇먹는 약 대체 수단 아닌 ‘또 다른 선택지’될 것
치료는 어떻게 이뤄질까. 장진구 이사는 “처음에는 10회 치료를 처방하고, 매일 혹은 일주일에 3회 정도 병·의원에 들러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경과를 지켜본 다음, 이 치료가 환자에게 효과를 보이는지, 치료를 더 이어갈지 판단한다”고 말했다.체감 효과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분명 증상 개선에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실제 주요우울장애 환자들에게 20~30회 TMS 치료를 시행했더니 40~50% 환자에게서 우울증 평가 점수가 기존보다 50% 이상 감소했으며, 25~30%가 관해에 도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학술지 ‘Therapeutic Advances in Psychopharmacology(정신약리학의 치료적 진보)’에 실린 적 있다.다만, 전자약이든 디지털치료제든 기존의 약물치료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진구 이사는 “약의 효과가 없었거나, 부작용 또는 임신 등 다른 건강상의 이유로 약을 복용하기 어려운 경우 약물치료 대신 전자약만 사용하기도 한다”면서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약물치료와 병행할 때 효과가 더 좋다”고 말했다.뉴로피드백 역시 아직 ADHD 환자에게 널리 쓰이는 일차적인 치료법은 아니다. ADHD 약의 효과가 크지 않았거나 부작용이 생겨서 약 복용을 이어가기 어려운 환자에게 시도해보는 정도의 단계다. 홍순범 교수는 “뉴로피드백 시행에 관한 표준 프로토콜이 아직은 없어서, 뇌파를 어떤 식으로 훈련할지나 어떠한 빈도로 시행할지는 의사마다 조금씩 다르다”며 “환자 자신의 몸 상태나 의료진 노하우에 따라 효과를 체감하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가 의료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홍순범 교수는 “임상 연구에서 효과가 증명돼 FDA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더라도, 의사와 환자가 효과를 체감하고 신뢰를 가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며 “효과에 대해 신뢰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크거나 비용이 과도하면 널리 쓰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진구 이사는 “뇌의 어느 부위를 공략할 것인지 그리고 한 번에 몇 분씩, 총 몇 회 치료를 이어갈 것인지 등 치료의 세부적인 전략을 환자마다 다르게 할 수 있다”며 “표준 치료 프로토콜이 생기더라도 임상에서 이를 활용하는 의사의 숙련도가 중요할 것이다”고 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6/02/20/20260220031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