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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절 '널 위한' 밥을 차릴 때는 절대 몰랐던 사실

또융
LEVEL23
출석 : 61일
Ex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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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밥은 내가 하지 뭐."     


그게 시작이었다. 작년 가을, 결혼을 막 앞둔 때였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가사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게 꼭 분담이 필요한가? 그냥 그때그때 해달라는 거 하면 되지!

둘 다 맞벌이고 밖에서 퇴근하고 돌아온 뒤의 집이 어질러져 봐야 얼마나 된다고. 밥? 그냥 간단히 때우거나 배달음식 시켜먹지, 뭐. 아내도 그 부분에 관해선 꽤나 쿨한 편이었다. 어차피 둘 다 바쁘니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혼 하고 밥은 내가 하기로 했는데 


하지만 세상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늘 그랬듯.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쓸더니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꿔버렸다. 신혼생활과 가사의 영역까지 전부. 아내가 기약 없는 재택근무에 돌입한 것이다(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금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재택근무다).


반면 자영업자인 나는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어쩌면 전쟁이 나고서도)은 이유를 불문하고 출퇴근해야만 한다.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맞벌이인데 한쪽이 집안 살림을 전부 독박 써야 하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니 뭐라도 한다고 말해야 했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바뀌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사실 입장을 바꿔보면 감정이입은 쉽다. 그 누구라도 자신이 부담해야 할 일 앞에선 계산이 빨라지니까. 만약 내가 퇴근 후에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한다면?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데에는 단 며칠도 걸리지 않으리라.

결혼은 엄연한 사회적 계약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맞벌이에 가사 독박을 옵션으로 한 계약서에 사인하진 않을 것이다(실제로 계약서를 썼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니 그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 건 계약 당사자인 내 의무였다.

그럼 뭘 하는 게 좋을까? 결국 주방뿐이었다. 애초에 밥을 차리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밤 10시 11시에 세탁기를 돌린다? 청소를 한다? 다 낡은 아파트에서 이런 짓을 했다가는 아래층 사람들과 싸우자는 얘기밖에는 안 된다. 다행히 요리는 조금만 신경 쓰면 밤늦게도 가능했다.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은 되도록 자제하고 도마 밑에 수건을 깔고 칼질을 하면 이웃에 피해를 줄 일은 거의 없었다.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을 다음날 아침에 냉장고에서 꺼내 먹을 수 있도록 하면 그만이었다. 다른 가사들과 비교해 배우자에게 생색을 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빨래를 잘했다고 배우자에게 칭찬을 받기란 쉽지 않다(사실 그건 세탁기가 한 거니까).

청소나 정리를 잘 한 건 인간이 적응의 동물인 탓에 이내 그 공로가 망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음식은 매번 배우자에게 다른 감각을 일깨워주기에 매번 칭찬을 받을 수 있다(물론 맛이 있다면). 늘 칭찬에 굶주린 자존감 바닥의 인간으로서 밥 차리기는 숙명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사실은 약간의 반감도 있었다. 아버지 세대의 남성들이 여성들의 주방 노동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들 말이다(외벌이와 전업주부의 분업구도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시대상 때문이겠지만). 일터의 여성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마다 비슷한 에피소드가 하나씩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체감하곤 했다.

오래간만에 친구들이랑 만나 놀고 있는데 밥 차려달라는 소리에 한숨을 쉬며 집으로 와야만 했다는 이야기.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도 가족들의 식사 걱정부터 먼저 해야만 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요리란 누군가의 온전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다른 가사에 비해 요리가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은 조직일수록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야 일이 원활하게 굴러간다. '나는 서빙을 하니까 주방 일은 몰라' 한다거나 '나는 매장 매니저니까 세금이랑 연말정산은 몰라' 식이라면 가게는 엉망진창이 된다. 그리고 독박을 쓰는 희생자가 생긴다. 희생자가 떠안아야 할 가장 큰 불행은 번아웃과 부자유다. 최소 단위 사회인 가정도 마찬가지다.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주방 노동


혹시나 싶어 말하지만 이 글은 내가 주방 살림을 잘해서 쓰는 게 아니다. 결혼 후 주방 살림을 꾸리며 얻은 깨달음이 적지 않았고, 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연애시절 '널 위해 준비했어' 식의 이벤트성 요리와 실전 가사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점점 알아가고 있어서다.


식당에서 일하는 나조차도 가사로서의 주방 일을 너무 단편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식당에서의 주방일이란 조리, 청소, 재고관리, 위생관리, 정리 및 동선 정비, 화재 및 위험요소 관리,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법의 총합을 말한다. 그만큼 주방에서의 노동은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다.

가정에서도 예외는 없다. 그곳이 사막이든 우주든 주방에서는 예외 없이 이 개념이 바로서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집밥 차리기란 여전히 '요리'라는 행위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은가.     

(개인 체감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주저 없이 주방에서의 가사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남성 지인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길게 글을 늘어놓고 있는 스스로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결혼생활에도 처음은 있기에 주방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해서 이후의 글을 다 읽는다면 적어도 주방에서의 살림이란 어떤 것인지 대강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썼다. 특히 결혼을 앞뒀거나 신혼인 남성들에게(베테랑 전업주부들이나 N년차 기혼자들이 보기엔 코웃음이 나는 수준의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설프더라도 주방 살림이란 게 얼마나 입체적이고 지난한 노동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자신에게도 가정에게도 꽤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하겠지.           

'도대체 우리 엄마는 어떻게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네 식구의 밥을 차렸던 걸까. 앞으로 나는 30년 40년 식구들의 밥을 차릴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아득하다. 그렇다. 스스로 잘났다고 하기에는 당장 내 코가 석자다. 나머지 얘기는 다음 글에서 하겠다. 이제 밥 차리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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