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 ‘자만추’는 요즘 좀 다르게 쓰인다고 한다. 새롭게 진화한 자만추의 뜻은 ‘자고 나서 만남 추구’. 만나서 썸을 타고 연애를 시작하고 난 뒤, 혹은 최소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의 순서에 섹스가 위치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여긴다면 자만추족은 먼저 잠자리를 가진 후 진지한 만남으로 이어갈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암묵적인 단계 대신 맨 뒤의 순서를 과감히 앞으로 끌어온 데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수많은 시그널을 해독하며 서로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간 후 마침내 사랑의 감정을 교환하고 고심 끝에 섹스를 했는데…궁합이 최악인 순간 활활 불타던 감정은 한순간에 식어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럴 바에는 자고 나서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꽤나 실리적이긴 하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사랑의 형태도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같은 정확한 틀로 찍어낼 순 없다. 남들에게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누가 봐도 확실한 관계가 있는가 하면 ‘저 그게 말이죠…’ 하면서 둘 사이를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공을 들여 단어를 선택해야 하는 관계도 있다. 물어보면 늘 연인은 없다고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연애 방식에 대해서, 자신이 만나고 있는 그 누군가와의 사이에 관해서 꽤 오랫동안 설명해야 한다. 이건 남들에게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그래서 우린 무슨 사이지?’ 서로에게 속박되는 건 싫고 상대방에게만 충성을 다할 만큼의 애정은 없어 자유롭게 사랑하기로 했지만 자꾸만 여러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도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상대방이 누군가와 근사한 바에 간 스토리를 보았을 때, 내가 보낸 카톡에 아주 오랫동안 답장이 없을 때, 그에게 접근하는 다른 사람이 신경 쓰일 때. 그래서 이 관계의 끝을 매듭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만나면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좋을 때. 분명 가벼워지고 싶어 시작한 관계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귀는 것보다 더 복잡해진다. 어쨌든 FWB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서로 잘 통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취향이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하는데 더 큰 감정이 자라나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 둘 중 한 명이 서로에게 FWB 이상의 감정을 갖게 돼 진지하게 만남을 가져보고 싶은 마음이 싹틀 때 이 관계의 혼란스러움은 가중된다. 어쨌거나 이렇게 된 이상 언젠가는 결말을 매듭지어야 한다. 시작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언제든 재정의할 수 있으니. 감정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면 원하지 않는 결말로 흘러가겠지만 그 또한 기꺼이 감수할 다짐을 하고 이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복잡한 의무는 빼고 즐거움만 추구하는데도 언젠가 정당한 값은 치러야 하니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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