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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오늘도 I was a car

또융
LEVEL23
출석 : 61일
Exp. 30%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초식녀라고 들어봤어요? 건어물녀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쉽게 말하면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을 말해요. 딱 상담자분 본인이 그래요. 이성은 별로 관심 없죠?”


어느 날 사주를 보러 간 자리였다. 사주야말로 동양 통계학 즉 오리엔탈 빅데이터의 총체이자 타고난 본성을 파악하는 하나의 도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삶은 자유의지로 선택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해온 나였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참고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초식녀, 그것도 이성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은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타고난 유리멘탈 개복치인 나는 대충 상황을 얼버무렸다.

“아..ㄴ..네… 초..초식… 동물이 더 오래 살던가요? 하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생각해도 아리송했다. 취미는 입덕, 특기는 덕질인 내게 좋아하는 것은 세상천지에 널려 있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설렘이 시작되면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와의 공통점을 음미하며, 차이점을 통해 반대가 끌린다는 이론에 무한 지지를 보내다가 “나랑 결혼해줄래”를 흥얼거리는 인간 군상의 자화상이 나란 말이었다. 그런 내가 초식녀라니…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한 증거들은 생활 곳곳에도 남아있었다. 매달 작고 소중한 월급이 아주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 주택청약통장도 그 중 하나다. 주택청약통장은 경제관념이 제로에 수렴하던 대학교 재학 시절 우연히, 아니지 운명처럼 내 손으로 들어왔다. 때는 내 생애 첫 풀메이크업을 하고 난생처음 제대로 된 옷을 차려입은 졸업 사진 촬영일.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러 광장 쪽으로 가던 찰나, 모든 장면이 슬로우모션으로 바뀌었다. 3년 내내 흠모해왔지만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던 선배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은행에 입사했다고 들었는데, 학교에 있을리가 만무한 그였다.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만 보는 유복치를 하늘이 가엽게 여기셨는지 이런 기회가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난데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안녕하세요. 저 OO 학번 학회 후배 유복치입니다. 학교엔 어쩐 일로.. ” 선배도 잇몸이 만개해 나를 맞이했다.

“아, 오며 가며 본 것 같아요.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 우리 잠깐 학생식당에서 얘기 좀 할까요?” 햇살에 비친 선배 얼굴이 해사했다.

우리는 학생회관 식탁에 마주앉았다. 아직 닦아내지 못한 김치 조각과 김 가루가 하얀 식탁을 수놓고 있었다. 선배는 능숙하게 서류를 펼쳤다.
“혹시 주택청약통장 있어요? 없으면 하나 만들어요. 통장에 돈을 좀 넣어야 하는데, 2만 원은 내가 넣어줄게요.” 나는 식탁 위 반찬찌꺼기를 피해 통장 가입 서류를 작성했다. 최대한 천천히 빈칸을 채우면서 선배에게 건넬 수백 가지 말을 떠올렸다. ‘예전에 같이 팀플했던 거 기억하시나요?(일부로 수업 따라 들었음) 저도 은행권 입사를 꿈꾸는데(사실 관심없음).. 선배님이 작성한 족보 잘 봤습니다.(근데 저 재수강해요)’ 3년 동안 복리식으로 적립해온 마음이 일순간 일렁였다. ‘지금이야!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킬 기회야! 말이라도 걸어보자!’

간신히 입을 떼려는 찰나, 선배가 분위기 넘쳐흐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중저음 톤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주민등록증 사본만 보내주면 돼요. 통장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부치씨” 부치가 아니라 ‘복치’인데..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분주히 서류 가방을 챙겼다. 간신히 걸쳐만 있던 넥타이, 구깃한 양복바지와 헝클어진 뒷머리가 눈앞을 스쳐 갔다. 머릿속에 떠오른 수백가지 말 중 단 하나도 못 뱉은채 그가 떠나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5월 봄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서류뭉치가 팔락였다.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서류 귀퉁이가 김칫국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초식녀라고 들어봤어요? 건어물녀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쉽게 말하면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을 말해요. 딱 상담자분 본인이 그래요. 이성은 별로 관심 없죠?”


어느 날 사주를 보러 간 자리였다. 사주야말로 동양 통계학 즉 오리엔탈 빅데이터의 총체이자 타고난 본성을 파악하는 하나의 도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삶은 자유의지로 선택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해온 나였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참고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초식녀, 그것도 이성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은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타고난 유리멘탈 개복치인 나는 대충 상황을 얼버무렸다.

“아..ㄴ..네… 초..초식… 동물이 더 오래 살던가요? 하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생각해도 아리송했다. 취미는 입덕, 특기는 덕질인 내게 좋아하는 것은 세상천지에 널려 있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설렘이 시작되면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와의 공통점을 음미하며, 차이점을 통해 반대가 끌린다는 이론에 무한 지지를 보내다가 “나랑 결혼해줄래”를 흥얼거리는 인간 군상의 자화상이 나란 말이었다. 그런 내가 초식녀라니…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한 증거들은 생활 곳곳에도 남아있었다. 매달 작고 소중한 월급이 아주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 주택청약통장도 그 중 하나다. 주택청약통장은 경제관념이 제로에 수렴하던 대학교 재학 시절 우연히, 아니지 운명처럼 내 손으로 들어왔다. 때는 내 생애 첫 풀메이크업을 하고 난생처음 제대로 된 옷을 차려입은 졸업 사진 촬영일.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러 광장 쪽으로 가던 찰나, 모든 장면이 슬로우모션으로 바뀌었다. 3년 내내 흠모해왔지만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던 선배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은행에 입사했다고 들었는데, 학교에 있을리가 만무한 그였다.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만 보는 유복치를 하늘이 가엽게 여기셨는지 이런 기회가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난데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안녕하세요. 저 OO 학번 학회 후배 유복치입니다. 학교엔 어쩐 일로.. ” 선배도 잇몸이 만개해 나를 맞이했다.

“아, 오며 가며 본 것 같아요.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 우리 잠깐 학생식당에서 얘기 좀 할까요?” 햇살에 비친 선배 얼굴이 해사했다.

우리는 학생회관 식탁에 마주앉았다. 아직 닦아내지 못한 김치 조각과 김 가루가 하얀 식탁을 수놓고 있었다. 선배는 능숙하게 서류를 펼쳤다.
“혹시 주택청약통장 있어요? 없으면 하나 만들어요. 통장에 돈을 좀 넣어야 하는데, 2만 원은 내가 넣어줄게요.” 나는 식탁 위 반찬찌꺼기를 피해 통장 가입 서류를 작성했다. 최대한 천천히 빈칸을 채우면서 선배에게 건넬 수백 가지 말을 떠올렸다. ‘예전에 같이 팀플했던 거 기억하시나요?(일부로 수업 따라 들었음) 저도 은행권 입사를 꿈꾸는데(사실 관심없음).. 선배님이 작성한 족보 잘 봤습니다.(근데 저 재수강해요)’ 3년 동안 복리식으로 적립해온 마음이 일순간 일렁였다. ‘지금이야!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킬 기회야! 말이라도 걸어보자!’

간신히 입을 떼려는 찰나, 선배가 분위기 넘쳐흐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중저음 톤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주민등록증 사본만 보내주면 돼요. 통장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부치씨” 부치가 아니라 ‘복치’인데..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분주히 서류 가방을 챙겼다. 간신히 걸쳐만 있던 넥타이, 구깃한 양복바지와 헝클어진 뒷머리가 눈앞을 스쳐 갔다. 머릿속에 떠오른 수백가지 말 중 단 하나도 못 뱉은채 그가 떠나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5월 봄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서류뭉치가 팔락였다.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서류 귀퉁이가 김칫국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필명은 유복치. 유리멘탈 개복치의 줄임말이다. 취미는 입덕, 특기는 덕질인 n년차 스타트업인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온마음을 쏟으며 살고 싶지만,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멘탈을 부여잡다 보니 2보 전진, 1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부분 차인 날 투성이지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다 보면 두려움 마저도 함께 나누고 싶은 소중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산다. 그래서 오늘도 차이거나, 차인 날을 회상하며 까무룩 잠이 든다. 내일은 차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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