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가을, 중국 간쑤성의 한 사막에 자리 잡은 초대형 태양광 패널 공장에서는 자동화 로봇과 작업자 수천 명이 끝없이 이어진다. 생산 라인에서 쏟아내는 태양광 패널들은 세계시장으로 내보내진다. 이 공장에서 만든 패널 가격은 불과 몇 년 전보다 절반이 넘게 떨어졌다. 지난 10년 동안의 가격을 조사해보니 와트당 0.7달러에서 0.1달러로 85% 가격이 내려갔다.
일부 중국 업체들은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원가 이하 주문도 마다치 않는다.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의 80%를 차지하며, 정부의 장기간 보조금 지원으로 구축된 거대한 공급능력이 글로벌 가격 폭락을 초래했다. 태양광 산업에서 벌어진 이 가격파괴는 우연이 아니다. 스마트폰, 석유화학, 철강,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업들은 유사한 전략으로 ‘차원이 다른’ 저가 공세를 펼치며 세계시장의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대량생산과 보조금이 빚어낸 초저가 혁명
중국 기업의 가격파괴 전략에서 첫 번째 비결은 엄청난 규모의 생산능력이다.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과 적극적인 설비투자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초대형 공장과 생산 라인을 구축해왔다. 그 결과 비슷한 제품을 경쟁국보다 훨씬 대량으로,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태양광 산업에서 중국은 연간 861GW에 달하는 모듈 생산능력을 갖춰 세계 수요의 두 배 이상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공급과잉 때문에 가격은 급락했고, 중국산 패널의 낮은 가격에 유럽의 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는 사태까지 초래됐다. 정부 보조금은 이 같은 대량생산 체제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중국 지방 정부들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투자에 아낌없이 지원했고, 그 결과 중국 기업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생산을 지속하며 글로벌 시장점유율 확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한국 대형 제철소의 고위 임원이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중국산 철강재와 경쟁하며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미래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이미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부 철강재 생산 라인을 폐쇄하고 있다. 중국산 철강재의 품질도 무서운 속도로 한국산 강재를 따라잡고 있고, 추월하기까지 한다.
철강산업을 보면, 중국은 2000년대 이후 국영 철강사를 앞세워 생산능력을 폭발적으로 늘리며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 됐다. 2023년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10억 톤을 넘었고, 수출도 9000만 톤에 달한다. 문제는 중국 내부 수요만으로는 이 막대한 생산량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낮은 수익률이나 과잉설비를 이유로 과감히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지방 정부의 지원 아래 생산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OECD 보고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 철강 부문의 보조금 지원율은 OECD 국가 평균의 10배에 이르며, 중국 철강업체들은 이 같은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가격인하 경쟁을 벌여왔다. 그 여파로 전 세계 철강 가격이 하락하고 중국산 저가 철강에 글로벌 동종 업계가 타격을 입자, 유럽 등은 고급 합금강이나 특수강 등 틈새 고부가제품으로 겨우 생존하는 실정이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세계 철강 초과 생산능력은 2025년 6억4400만 톤에 달해 OECD 전체 생산량보다 많을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 요구를 받고 있지만, 시장의 공급과잉을 개의치 않고 생산과 투자를 우선시하는 공급 정책은 여전하다. 중국 스스로도 “어떤 기업들은 생산은 늘리지만 매출이나 이익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가격은 내려가는데도 비효율 설비를 끌고 가는 모습에 대해, 시진핑 주석 역시 서구식 시장경제 체제로는 중국식 현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정책 기조를 옹호했다.
이러한 가격파괴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빠지지 않는다. 중국 당국은 산업별로 각종 보조금, 세제 혜택, 저리 대출 등을 동원해 자국 생산 확대를 도왔다. 특히 첨단산업이나 전략산업의 경우 중앙과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기업에 손을 내밀어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을 장려한다. 반도체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2014년 국가 반도체산업 추진 지침을 발표하며 1500억 달러 규모의 국가 IC 산업투자펀드(일명 ‘대기금’)를 조성했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천문학적 보조금을 투입해왔다. 이런 막대한 산업 보조금 덕분에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제품을 저가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됐다. 2024년 9월 25일부터 3일간 중국 우시에서 열린 CSEAC라는 반도체 장비와 부품 전시회에 다녀오고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와 부품 기업들의 발전 속도에 또 한 번 놀랐다. 우리 부스에 들른 한국의 반도체 기업인들은 앞으로 뭘 먹고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기술 모방에서 내재화까지: 따라잡기의 경제학
얼마 전에 만난 중국 기업인은 “중국인들은 0부터 1까지 만드는 것은 잘 못 하지만 1부터 100까지 만드는 것은 잘한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중국의 젊은 이공계 인재들이 기대 이상으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낸다”라고 자랑했다. 중국 기업의 원가절감 전략에는 이런 기술 전략도 한몫했다. 초기에는 선진 기술을 신속하게 모방하고 라이선스를 얻어와 제품을 만들었고, 이후 점차 기술 내재화와 자체 개발로 전환함으로써 비용을 더욱 낮추는 방식이다. 스마트폰 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2010년대 초반 샤오미(Xiaomi)는 온라인 직판과 구전 마케팅을 활용하며 애플 아이폰에 버금가는 사양의 스마트폰을 절반 이하 가격에 내놓아 시장을 흔들었다. 샤오미를 비롯해 오포(OPPO), 비보(Vivo) 같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초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외국산 칩셋 등 핵심 기술을 활용하여 빠르게 제품 라인업을 확장했다. 디자인과 UI는 아이폰이나 삼성 갤럭시를 벤치마킹하면서도, 듀얼심 카드나 대용량 배터리처럼 현지 소비자 선호 기능을 곁들여 가성비를 극대화했다. 이러한 ‘창조적 모방’ 덕에 R&D 비용은 줄이고 출시 속도는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방에만 머물렀다면 오늘날 중국 스마트폰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다투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축적된 생산 경험과 자본을 바탕으로 자체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모방 → 개선 → 자력’ 혁신의 선순환을 구축하면서, 중국 기업들은 가격은 낮게 유지하되 제품의 품질과 기능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기술 고도화와 생태계 확대까지 결합된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제 중국 제품은 단순히 싸기만 한 저가품이 아니라 어느덧 ‘가성비 최고’의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탄탄한 공급망도 원가절감의 핵심 요인이다. 중국 제조업의 클러스터들은 상상 이상의 규모 경제를 자랑한다. 스마트폰의 심장부라 할 선전(深 )에는 부품 공급사, 조립 하청업체, 포장·물류 업체까지 수천 개 기업이 밀집해 24시간 돌아간다. 이 거대한 공급망 안에서 중국 기업들은 부품 공동 조달, 설계-제조 일체화 등을 통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화면 패널은 중국산 BOE나 CSOT 패널을 대량 구매하고, 메모리는 자국 업체 또는 저렴한 해외 공급처를 확보하며, 중저가 모델에는 미국 퀄컴 대신 대만 미디어텍의 칩셋을 써서 비용을 줄였다. 여기에 부품별 여러 하위 협력업체를 경쟁시켜 단가를 인하하는 방식도 동원된다. 결과적으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동급의 하드웨어를 서방 경쟁사보다 훨씬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아예 반도체 칩, 배터리, 센서 등 핵심 부품까지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며 공급망에서 외국 의존도를 낮추고 원가 우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 장악력이 중국 기업들로 하여금 가격인하 여력을 더 크게 만들어줬다.
출처 : 포브스코리아(Forbes Korea)(https://www.forbes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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