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를 믿고 000을 매수한 분들은 이제 빚은 다 갚으셨겠죠.”
개인투자자인 A씨는 SNS에 올라온 문구에 혹해 프로필 링크를 눌렀다. 연결된 홈페이지에는 ‘한국의 닥터둠’이라고 불리는 김영익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의 얼굴과 함께 네이버 밴드 가입을 유도하는 안내 문구가 떴다. A씨는 전문가들이 우량주를 추천해준다는 말에 채팅방에 들어갔지만 인공지능(AI)이 쓴 듯한 어색한 말투가 수상해 대화를 중단했다.
최근 유명 경제 전문가를 사칭해 개인투자자들을 불법 주식 리딩방으로 유인하는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자금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를 틈타 ‘단기 고수익 보장’과 ‘우량주 추천’ 등을 미끼로 한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사칭 대상은 국내외 인사를 가리지 않는다. 또 다른 주식 추천 SNS 계정 프로필에도 급등 종목을 공유한다는 이른바 전문 연구팀의 홈페이지 링크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내건 전문가 사진은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에쿼티퍼스트’의 임직원 얼굴을 도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에쿼티퍼스트는 자사 홈페이지에 승인되지 않는 소셜미디어, 포럼, 채팅 그룹에서 대표를 사칭하는 개인이나 그룹을 주의하라는 공지를 올렸다.
김 교수는 28일 기자와 통화하며 수년 전부터 사칭 계정과 씨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AI로 자신의 목소리를 도용해 강의한 리딩방을 발견하고 직접 신고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금전적 피해를 본 당사자가 나서지 않는 이상 수사가 어렵다”는 설명을 반복해 들었다고 했다.
김 교수 사례처럼 사칭 피해를 신고하더라도 실제 수사와 처벌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현행법상 공무원 사칭이 아닌 일반인 사칭 행위에는 명예훼손죄 등을 적용해 단독으로 처벌할 마땅한 규정이 없어서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단순 사칭만으로는 처벌 규정이 없어 초상권 침해 등의 민사적 제재는 별개로 치더라도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 사칭이 대부분 사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사칭 단계부터 수사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민우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사기죄는 친고죄에 해당하지 않아 피해자가 나서지 않고 제3자가 고발하더라도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며 “그간 수사기관이 관행적으로 제3자 사기 고발에 소극 대응했던 것뿐 가해자의 금융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등 수사할 방법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불법 주식 리딩방 피해는 끊이지 않는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지난 1~3월 발생한 사칭형 피해 건수는 6769건, 피해액은 1817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총피해 건수는 1만1468건, 피해액은 3916억원이다. 최근에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를 사칭한 SNS 계정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사칭 관련 처벌 규정이 포함된 ‘타인 사칭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2015년부터 추진됐으나 담당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방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관행을 쉽게 바꾸긴 어려우므로 현실적으론 사칭 자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