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의 금품 수수 의혹 수사를 계기로 통일교가 정치권에 벌인 전방위적인 로비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평화·통일’ 등 종교적 색채를 지운 국제행사로 정치인들의 거부감을 줄인 통일교는, 직접적인 정치후원금뿐만 아니라 강연 의뢰, 책 구입 등 가지각색의 방식으로 정치인들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탈법’의 경계에 있는 각종 로비들이 대가성 있는 ‘청탁’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18일 한겨레 취재 결과, 통일교가 정치권에 벌인 로비 작업의 핵심에는 2005년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설립한 ‘천주평화연합(UPF)’이 있다. ‘정교 분리’의 문턱을 넘는 천주평화연합의 활동 근거는 통일교의 정점인 한학재 총재의 “청와대와 국회의 지도자들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도록 만들라”는 지시였다. 2021년 4월 특별집회에서 한 총재의 이런 지시를 공개한 천주평화연합은, 정치·경제·학술·언론 등 6개 분야에서 ‘브이아이피(VIP) 의인을 찾아야 한다’며 현역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을 섭외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천주평화연합은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한반도 통일’이나 ‘세계 평화’와 같은 가치를 앞세운 행사를 개최해 정치인들에게 접근했다. 천주평화연합 산하 국회의원 단체인 ‘세계평화국회의원 연합’(IAPP)의 지난 4월 총회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등 중견 정치인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친밀감을 쌓은 정치인들은 ‘의장·고문’ 등의 직함을 부여해 ‘통일교 식구’로 삼았다. 금품 수수 의혹을 수사를 받는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이에이피피의 의장이었고, 김규환 대한석탄공사 사장(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고문,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회원이었다.전국을 다섯개의 권역으로 나눠 유력 정치인들을 관리하는 ‘권역별 관리 방식’도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특징이다. 통일교는 권역별 간부인 지구장을 통해 주요 정치인들에게 숙원사업의 필요성을 전파하게 했다. 영남권의 5지구장 박아무개씨는 2018년부터 수년에 걸쳐 영남권 정치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며 ‘한일 해저터널’ 관련 사업의 협조를 구했다. 경기·강원권의 2지구장 황아무개씨는 또다른 숙원사업인 ‘디엠제트(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지난 2021년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이던 이재강 민주당 의원과 만나기도 했다.정치인들을 향한 경제적 지원은 ‘합법’과 ‘탈법’의 경계에서 이뤄졌다. 지난 16일 한학자 총재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 과정에서 통일교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선교활동 지원금’을 명목으로 김진태 강원지사(500만원), 강기정 광주시장(200만원) 등 여야 정치인 10명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사실이 공개됐다. 아이에이피피가 지난 2020년 6월2일 작성한 문건에는 김규환 사장에게 고문 수수료로 6개월간 총 14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근에는 통일교가 2019년 1000만원을 지급하고 전재수 의원의 책 500권을 사들인 사실도 드러났다. 이 책들은 경기도 가평군 천정궁에 대량으로 쌓여 있었다고 한다. 통일교 내부 관계자는 “창고 앞에 쌓여 있어 무슨 책이냐고 묻기도 했다. 책을 주변에 나눠 주진 않고 폐기 처분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해당 도서는 출판사를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됐으며 세금계산서까지 정상 발급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저는 통일교로부터 그 어떠한 불법적인 금품수수도 없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경찰은 금품수수 의혹 압수수색 영장에서 ‘한일 해저터널 건설 계획, 천정궁 건립 등 현안 사업과 관련 자료 중 이 사건 범죄 혐의 사실과 관련된 자료’를 압수 품목으로 적시했다. 경찰 관계자는 “금품 수수 당시 통일교가 주력하던 각종 현안들이 (금품 수수와) 연관돼있을 가능성을 두루두루 살펴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경찰은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한학자 총재 등을 접견 조사한 데 이어 18일에는 통일교 최고 실세로 꼽히는 정원주 전 비서실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은 19일에는 전재수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