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워싱턴 DC 북동쪽으로 30분을 차로 달리면 나오는 메릴랜드대 캠퍼스 내에 있는 양자 컴퓨팅 회사 ‘아이온큐(IONQ)’. 최근 찾은 이곳의 제작 시설 안에선 검은색 상자 모양의 컴퓨터를 가운데 놓고 연구 인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양자 컴퓨터는 대개 영하 273도의 극저온에서만 가동해 거대한 냉각 장비가 필요한데 아이온큐는 전자기장으로 이온을 잡아두는 ‘이온 트랩 기술’을 활용해 상온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 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지난 4~5년 내내 양자 기술에 대해 얘기해왔고 아주 흥미로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메릴랜드대는 1988년 ‘초전도성 연구 센터’가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양자 기술 연구를 선도해왔다. 이후 이 학교를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양자 클러스터가 형성됐고, 2020년 ‘미드 애틀랜틱 퀀텀 얼라이언스(Mid-Atlantic Quantum Alliance)’란 이름의 연합체가 출범했다. 여기에는 버지니아공대 등 15개 대학,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센터 등 5개 정부 연구 기관, 록히드 마틴·아마존 웹서비스 같은 대기업 등 50여 개 기관이 가입해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을 에워싼 순환도로에서 가까워 이 일대에는 ‘세계의 양자 수도’라는 별칭도 생겼다.
존 소이어 총괄 디렉터는 최근 국무부 주관 간담회에서 “지역의 양자 기술 과학자, 대기업, 스타트업 등을 한곳에 모아 협업의 장을 제공해주는 포럼”이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찬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아이온큐같이 캠퍼스 안팎에 기업들이 입주해 있어 대학 입장에선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피드백을 받고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 메릴랜드대 관계자는 “다양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어 스타트업이 와서 실험을 하고, 초기 소비자들이 주문을 넣어 시제품을 받아보기도 한다”며 “함께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양자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양자 기술은 인공지능(AI), 신소재, 신약 개발, 암호 해석, 통신, 금융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트립티 신하 메릴랜드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0과 1 중 하나를 비트(bit)로 인식하는 일반 컴퓨터와 달리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상태를 이용하면 계산 속도, 정보 저장 능력이 비교도 안 될 만큼 월등하다”며 “AI 열풍 때문에 데이터 센터 건설이 늘고 있는데 (양자 기술을 활용하면) 거대하게 지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일찌감치 양자 기술의 중요성을 간파한 미국은 2018년 초당적 지지를 바탕으로 5년 동안 30억달러(약 4조원)를 양자 연구에 투입하는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NQI)’를 출범시켰다. 또 2022년 5월엔 백악관 직속 ‘양자 컴퓨터 위원회’가 신설됐다.
양자 기술은 미국과 중국이 사활을 걸고 경쟁을 벌이는 영역이기도 하다. 누가 기술과 표준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산업 구도는 물론 안보 지형까지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이 반도체 분야에서 상호 인력·기술·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추세인 것처럼 양자 기술을 놓고도 향후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존 임원 출신인 피터 채프먼 아이온큐 최고경영자(CEO)는 “서방에선 과학적 논문을 생산하고 지식을 공유하고 특허,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 건강한 문화가 있는데 중국에선 좀 어려운 것 같다”며 “국가 안보 측면에서 보면 중국과 무언가 협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양자 분야 관련 대(對)중국 투자를 통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국립양자과학연구소’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은 실무 작업을 맡은 과학자들이 메릴랜드대에 자문했다고 한다. 아이온큐 관계자는 “현대자동차와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며 “한국과는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자율주행차는 이미지 분류, 3D(3차원) 물체 감지가 필수적인데 양자 컴퓨터를 활용하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한미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에 맞춰 양자 과학기술 부문에서 민관 교류를 촉진하고 기술 규제, 표준화에 공조하는 ‘한미 양자정보과학기술 협력 공동성명서’를 체결했다. 한국은 독일·프랑스·일본 등에 이어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 동맹에 합류한 13번째 국가다.
☞양자 컴퓨터
반도체를 사용하는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미래형 컴퓨터를 말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최적의 해법을 찾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모든 해법을 동시에 탐색해 단 한 번 만에 최적의 해법을 찾아낸다. 이 때문에 실용화될 경우 지금 기준 최고의 성능을 지닌 컴퓨터로도 1만년이 걸리는 연산을 단 3~4분 만에 끝낼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금융과 무인 교통 시스템, 국가 보안 체계 등 각 분야에서 기존의 컴퓨터로 해결하지 못했던 각종 난제들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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