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친환경 정책이 강화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와 스마트폰 등 우리 주력 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유럽의회는 14일(현지시각) 본회의에서 배터리 설계에서 생산, 폐배터리 관리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이하 배터리법)’을 승인했다. 법안은 EU 환경이사회의 승인을 거치면 최종 확정된다.
유럽 내 공급망을 구축한 국내 배터리 3사와 스마트폰 점유율 1위 삼성전자 모두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였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실제 법안 시행까지는 시간이 남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법은 EU 시장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를 비롯해 전기차 등 산업용에 이르기까지 업계 전반에 걸쳐 배터리의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친환경성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다. 세계적으로 전기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향후 폐배터리 급증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을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EU는 법 발효 시점을 기준으로 8년 뒤부터 역내에서 새로운 배터리 생산 시 핵심 원자재의 재활용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원자재별 재활용 의무화 비율은 시행 8년 뒤 기준 코발트 16%, 리튬 6%, 납 85%, 니켈 6% 등이다. 시행 13년 뒤에는 코발트 26%, 리튬 12%, 납 85%, 니켈 15%로 의무 비율이 높아진다.
휴대용 폐배터리는 당장 올해 45% 수거 의무가 적용된다. 2030년까지 73%로 단계적 확대하기로 했다.
생산 공정에 대한 규정도 강화된다. 전기차 및 전기자전거와 같은 경량 운송수단(LMT) 배터리 등은 생산·소비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의미하는 '탄소 발자국' 신고가 의무화된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는 이번 법안 시행으로 직접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에 2025년까지 115GWh, SK온은 2028년까지 총 83.5GWh, 삼성SDI는 2025년까지 40GWh의 공급망을 확보할 계획이다.
다만 정부는 배터리법의 구체적인 이행 방법을 담은 하위 법령 제정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대응 여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참고 자료에서 "EU 배터리법 내 특정 기업을 차별적으로 적용하거나, 국내 기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조항은 없다"며 "고 밝혔다.
정부가 유럽의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유럽연합(EU)의 ‘지속 가능한 배터리법’으로 인한 국내 기업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정 국가에 차별 적용하는 내용이 없고, 구체적인 이행 방법을 담을 하위법령 제정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참고 자료에서 "EU 배터리법 내 특정 기업을 차별적으로 적용하거나, 국내 기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조항은 없다"며 "향후 법의 실질적인 사항을 담는 하위 법령 제정이 중요한 만큼 우리 기업들과 함께 긴밀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9월 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삼성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벤자민 브라운(Benjamin Braun) 삼성전자 구주총괄 마케팅팀장이 갤럭시Z플립4를 소개하는 모습 / 삼성전자
배터리법에는 휴대용 기기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소비자가 쉽게 제거하고 교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휴대용 기기는 스마트폰, 전자담배 등이다. 조항 대로라면 삼성전자는 유럽에서 배터리 탈착형 스마트폰 모델만 팔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5년 출시한 갤럭시S6 이후 일체형 배터리 디자인을 유지해왔다. 배터리 교체가 불가능해 항상 충전이 필요한 단점이 있지만, 더 얇고 가벼운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커 탈착형 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애플도 2007년 아이폰 1세대 출시 이후 일체형 디자인을 고수 중이다.
스마트폰 제조 업계에선 글로벌 산업 트렌드에 역행하는 규제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유럽시장만을 위해 배터리 탈착형으로 설계와 생산라인을 변경할 경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3년 1분기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34%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애플과 샤오미가 각각 25%, 19%의 점유율로 뒤를 이었다. 배터리법이 시행되면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타격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EU가 잇따라 친환경 규제 시행을 예고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있다.
올 초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8K·OLED 등 프리미엄 TV가 유럽 시장에서 판매를 중단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EU가 3월 TV 에너지효율지수(EEI)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양사는 저전
력모드를 기본 기능으로 하는 대안을 마련해 가까스로 판매 중단 위기를 넘겼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제조사 대부분이 일체형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기에 법안의 실제 시행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다만 법안이 시행된다면 TV와 마찬가지로 유럽시장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