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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다

seoyun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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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03 03:00 수정 : 2022.08.03 03:01

[강준만의 화이부동] 윤석열,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다

“집값이 너무 심하게 올랐어요. 내 집 마련은 평생 불가능할 것 같네요.” 

“아니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게 문재인 정권 탓이란 말이에요? 이번에 서울시장으로 오세훈 뽑겠네요.” 

“아이고 그런 뜻이 아닌데, 쓸데없는 말을 해 죄송합니다.” 

“이미 기분이 상했으니, 당장 그만두고 환불해주세요.” 

2021년 3월 서울의 어느 네일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경향신문(2021년 4월1일)에 실린 <“한국사회, 무조건 자기편만 지지” 82%>(류인하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에 소개된 에피소드를 내가 조금 각색해 소개한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어느 설문조사 내용을 보도한 이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들은 현재 한국 사회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기와 같은 편을 지지(82.5%)하며, 중도적인 의견은 무시되는 사회(71.4%),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과 편하게 정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사회(79.7%)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젠 이미 상식이 돼버린 이야기다. 그런데 언론은 진보건 보수건 그런 상식과는 거리가 먼 정치 논평을 일삼고 있다. 언론에서 유권자를 탓하는 주장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게다. 잘못된 정치의 모든 책임은 100%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게 언론의 한결같은 주장이요 신념이다. 고객들에게 지적질을 하긴 어려우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유권자가 달라지지 않고서 정치의 변화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유권자는 언론 비판의 성역인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언론은 유권자를 초등학생처럼 다룬다. 유권자의 잘못된 행태도 정치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정치인을 비판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런 비판에 앞장서던 언론인들이 변신해 정치판에 들어가면 기성 정치인들보다 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교수들, 법조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좀 정직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점에서 미국 언론인 에즈라 클라인의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오늘날 정치의 주요 문제로 ‘약한 정당-강한 당파성’ 현상과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만은 당파적일 때 가장 치명적 

미국에서 1964년에는 유권자들의 약 80%가 자신들이 공화당원이거나 민주당원이라고 말했지만, 2012년에는 그 비율이 63%로 떨어졌다. 이렇듯 정당은 약해졌지만, 미국인들의 당파성은 더욱 강해졌다. 이게 바로 ‘약한 정당-강한 당파성’ 현상이다. 지지하는 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서 기인하는 당파적 행동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클라인은 이런 ‘부정적 당파성’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50년 동안의 미국 정치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투표에서 특정 정당을 더욱 일관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투표하는 정당을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편 정당을 더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희망과 변화가 미약해지는 순간에도 두려움과 혐오는 계속된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희망과 변화는 사라지고 두려움과 혐오가 정치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는 게 말이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37%와 민주당원의 31%가 상대 당을 ‘국가의 안녕에 대한 위협’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6년 조사에서 이 수치는 공화당 45%, 민주당 41%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이런 ‘부정적 당파성’을 입증해 보인 대표적 인물이 텍사스주 민주당 하원의원 베토 오루크다. 그는 2016년 민주당이 아주 싫어하는 공화당 정치인 중 하나인 테드 크루즈를 상대로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승산은 희박했지만 오루크의 출마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는 상원 경선 사상 가장 많은 돈을 모금했다. 그는 3% 차이로 패했지만, 갑자기 치솟은 지지 덕분에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하게 되었다. 

오루크는 대대적인 광고, 고액의 모금액과 함께 2020년 민주당 예비선거에 뛰어들었지만, 여론조사에서 빠르게 추락했다. 이 추락에 대해 클라인은 “오루크의 상원 선거운동 촉매제는 크루즈에 대한 진보 진영의 혐오감, 그가 패배할 수도 있다는 스릴이었다”며 “오루크가 다른 민주당원과 대결했을 때, 상원 선거운동에서 보여줬던 그의 마법 같은 카리스마는 사라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런 ‘부정적 당파성’은 한국에서 대통령 윤석열의 지지율 추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누구나 다 인정하겠지만,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 다수 유권자들이 갖고 있던 강한 반감의 수혜자였다. 게다가 그의 승리는 대선 사상 최소 표차(24만7077표, 0.73%포인트)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던가. 윤석열은 대선 승리 후, 대통령 취임 후, 그리고 지방선거 승리 후, 겸손하고 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했건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른바 ‘어퍼컷 세리머니’에 여전히 취해 있는 듯 보였다. 

적(敵)이 분명했던 냉전시대엔 적에 대한 공포감으로 기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적이 사라진 탈냉전시대엔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1995)에서 “냉전은 신이 내린 일종의 선물이었노라고 이제 우리는 회고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그렇게 말해야 한다”며 “확실히 그것은 공포에 입각한 질서로서 내적 위기를 계속 외적 원인, 즉 적들에게로 전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그런 역사적 교훈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적이 사라진 상황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문재인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사라졌다. 민주당의 막강한 의석수는 건재했을망정 이제 더 이상 여당이 아닌 야당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알박기 인사들이 도처에 버티고 있긴 했지만, 그들은 ‘한줌’에 불과했다. 패배의 상처와 증오로 똘똘 뭉쳐 윤석열 정권을 향해 저주의 언어를 난사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겐 너그러움을 베풀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만 대신 겸손, 불만 대신 감사를 

가장 중요한 건 윤석열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공포와 혐오를 느낄 대상이 사라졌거나 그 대상을 무시해도 좋을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권교체는 윤석열이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얻을 반사이익이 사실상 소멸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표가 돼 이전의 비호감 대결구도를 되살리는 ‘적대적 공생’의 가능성엔 아예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다. 대통령의 체급은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정권교체는 윤석열 스스로 지도자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이지 않으면 이전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게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달라질 건 전혀 없다는 듯 검찰총장 시절의 건들건들한 언어 구사법을 고수했다. 자신이 공격했던 문재인 정권의 나쁜 점까지 답습했다. 내로남불과 ‘전 정권 탓’을 그대로 가져다 써먹었다. 약속마저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 부인 김건희의 처신에 대한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지키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이건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이었다. 

상황의 차이에 대한 무지도 심각했다. 문재인은 국정농단 사태로 만들어진 보수의 폐허 위에서 집권했다. 무슨 일을 해도 박수받게 돼 있었다. 물론 오히려 이런 호조건이 문재인 정권을 망친 이유가 되었지만, 윤석열 정권은 최악의 조건에서 탄생했음에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바람에 스스로 망가질 위기에 처해 있다. 

겨우 ‘0.73%포인트 격차’로 탄생한 데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라는 장벽 앞에 선 윤석열 정권은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이변’이 내포한 경험의 부족과 편향의 한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이 모든 걸 오히려 정반대로 해석했다.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여기면서 자신감을 뿜어냈고, 이는 자해의 극치라고 해도 좋을 오만으로 이어졌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8030300005 출처 

“오만은 당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치명의 갈림길에 선 윤석열이 살 길은 딱 하나다.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을 경우를 늘 상상하면서 사는 것이다.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 눈을 돌리면서, 오만 대신 겸손, 불만 대신 감사의 자세를 갖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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